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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


글 쓴 이  
   크크리 (2016-07-25 17:37:39, Hit : 380, Vote : 21)
제     목  
   [re] 초기 신라인의 姓에 대해
문경현 교수님 자료를 찾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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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박씨의 골품에 대하여
문경현 (역사교육논집, Vol.13·14 No.1, [1990])[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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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初附庸于百濟, 百濟征高麗, 不堪戎役, 後相率歸之, 遂致强盛. 因襲百濟, 附庸於迦羅國焉.
至眞平. 以隋開皇十四年, 遣使貢方物. 文帝拜眞平上開府·樂浪郡公·新羅王.

신라왕은 원래 백제 사람이다 바다를 통해서 신라로 들어가 그 나라와 왕을 물려 받았다. 처음에는 백제의 속국이었다. 백제가 고구려를 정벌할 당시 그 부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相率歸之해서 강성함을 이루었다. 이런 이유로 백제를 공격하고 가야에 부용하게 되었다. 세세토록 30대를 전하여 진평(眞平)에 이르렀다.

수(隋) 개황(開皇) 14년(594)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문제(文帝)가 진평에게 상개부(上開府)·낙랑군공(樂浪郡公)·신라왕(新羅王)을 주었다.

[출처] 북사 열전 신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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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수님은 북사에서 신라왕이 백제인이고 30대를 전하여 진평에 이르렀다를 근거로 박씨는 왕족이 아니었다고 하신 겁니다.  1990년 논문이고, 아직 박혁거세, 거서간이 타밀어로 '추대받아 왕이 된자', 거서간은 '왕'을 의미한다가(2007년주간경향)가 알려지기도 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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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사(古事)에는 ‘하늘이 금궤를 내려 보냈기에 성을 김씨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괴이하여 믿을 수 없다. 내가 역사를 편찬함에 있어서 이 말이 전해 내려온 지 오래되니 이를 없애지 못하였다. 그런데 또한 들으니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소호(小昊) 김천씨(金天氏)2)의 후손이라 하여 김씨로 성을 삼았다.’고 한다.[이는 신라 국자박사(國子博士) 설인선(薛因宣)이 지은 김유신의 비문과 박거물(朴居勿)이 짓고 요극일(姚克一)이 글씨를 쓴 「삼랑사비문(三郞寺碑文)」에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자왕 [義慈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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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한왕 관련내용을 김부식이 몰랐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김부식 대에는 문무왕 비문이나 태종무열왕비문도 파손되거나 없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삼국사기 편찬관들이 의도적으로 저와 같이 말했을 뿐입니다.

김알지 이야기는 진흥왕 이전에는 김씨에게 필요했었던 겁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왔으나,  중국과 소통하게 되면서, 성씨를 내세울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김알지보다는 그의 아버지인 성한왕, 김일제, 소호금천씨를 주장하게 된 것이지요. 김알지는 자신의 가문을 숨기기 위해 신화를 만들어야 했지만, 진흥왕때에는 한나라가 망한지 오래되었고, 신라의 전성기였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후손들이 김씨였음을 표출한 것이지요.

그리고 중국과 소통하기전에 굳이 기록에도 성을 표시하진 않았습니다. 그들의 일상에서 쓰는 이름만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고, 삼국사기에도 김유신이라 않고, 유신이라 적은 부분도 있습니다. 남당유고에서도 김알지를 알지신군, 세한을 세한으로만 적고 있습니다.
성은 있으나 김알지, 김세한이라 안하고
알지, 세한이라 통상적으로 불렸고, 그렇게 기록을 했던 겁니다.

부도지를 믿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거기에는 김씨, 석씨, 박씨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상황답게 석탈해에 대해 매몰차게 말합니다. (석씨 계열이 몰락한 시점입니다.)

--석씨는 동쪽 작은성(東堡) 유배인의 후예로, 옛날부터 바닷가(海濱)에서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김씨에 대해서는
- 김씨는 원래 부도(符都)에서 동쪽으로 옮겨와 살던 씨족으로,따뜻하고 겸손하고 후덕(溫讓德厚)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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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아래 크크리님의 반박문에 대한 재반박입니다.
>
>신라왕족이 7세기대에 이르러서야 보편적으로 성을 사용했다는 것은 6세기대 그 많은 신라 금석문에 성이 없으므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신라 금석문은 판결문도 있고 행정문서도 있지만 어쨌든 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
>7세기대 금석문은 많지 않지만 김씨와 박씨가 보이고 일본서기의 신라사신 이름에 김씨와 박씨가 등장합니다.
>
>唐書에 신라왕족은 김씨이고 귀족은 박씨라고 나옵니다.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명문에는 대부분 관직자가 김씨이고 일부 전문기술직에 추정하는 인물이 박씨성을 갖고 있습니다.
>
>신라에서 최초로 김씨성을 사용한 사람은 진흥왕으로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진흥왕에서 위로 추적한 직계조상들을 김씨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추적한 시조는 미추왕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신라왕족인 김씨 집단이 시조로 믿고 있었던 인물은 따로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나타납니다. 그렇게 나타난 인물이 성한왕입니다.
>
>삼국사기에는 성한왕이 보이지 않고 따라서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 문무왕비문에 김씨 집단이 흉노왕자 투후 김일제의 후손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이 나타납니다. 김씨 집단이 실제 김일제의 후손인지 막연히 흉노의 후손이란 사실만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확실한 것은 최초로  김씨 성을 사용한 사람은 진흥왕이며 그보다 앞선 시기에 김씨 성을 사용했거나 기록에 나오는 김씨 시조에 대한 내용은 신빙성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
>당장 삼국사기에는 신라 왕족이 시조 또는 태조로 믿었던 성한왕이 없습니다.  또 박씨가 왕족이었다는 것도 입증되지 않고 昔이란 성을 사용한 인물은 신라 당대의  어떤 기록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
>문경현 교수 같은 분은 박씨 왕족설은 고려때 삼국사기가 탄생하기 직전에 탄생했고 삼국사기 저자가 그것을 인용한 것 뿐이라고 말합니다.
>
>일본의 신찬성씨록에는 수없이 많은 성이 보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성을 스스로 창안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지 신라에는 대부분 김씨이고 박씨 설씨 최씨,姚씨 顔씨 등의 성이 보이는데 다 꼽아도 열손가락으로 헬 정도입니다.
>
>조선  초기만 해도 성을 가진 사람은 10%안팎이고 갑오경장때만 해도 30%의 인구는  성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서석 (2016-07-25 22:37:48)   
閼智는 흉노왕비를 부르는 閼氏를 나타낸다고 봅니다. 아버지를 추적하다 보면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시대가 나타납니다. 아버지를 모르면 어머니 이름을 적을 수 밖에요. 신라인이 초기에 모계로 혈통을 계승했다는 근거는 많습니다. 초기기록에 아버지의 이름이 두 갈래로 적힌건 기록이 두갈래인 탓도 있겠지만 실제 당대에 아버지를 정확히 몰랐던 시대상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크크리 (2016-07-25 23:35:46)   
호공이 이를 왕에게 아뢰자 왕이 그 숲으로 가서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상자 안에는 남자 아이가 누워 있다가 곧바로 일어났으니 혁거세(赫居世)의 옛 일과 같았다. 그래서 혁거세가 자신을 알지(閼智)라고 한 일에 따라, 그 아이를 알지라고 이름 붙였다. 알지는 우리말로 어린 아이를 뜻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알지 [金閼智]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저는 여왕이 낳은 아이란 뜻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박혁거세도 어머니 선도성모가 여왕이었고, 김알지도 여왕[박혁거세와 월광의 딸인 월지(月知)]이 낳은 아이였고, 태자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알지는 여왕이 낳았다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당유고엔 알지의 아버지가 호공, 어머니가 월지로 되어 있었지만, 결국 성한왕 대신 호공의 아들로 꾸며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크크리 (2016-07-26 08:54:12)   
다시 정리해보면 알씨는 연지라 발음했고, 알씨를 알지로 적어 놓고, 똑같이 연지로 발음했을 겁니다.

흉노족이 왕비에게 연지라 했는데, 그것을 신라에서 썼다는 얘기고...

신라에서는 여왕의 후계자란 의미에서 알지를 붙였던 겁니다.

선도성모와 천신(=도절) 사이에 박혁거세가 태어나 알지라 불렸고,

월지와 성한왕 사이에 김알지가 태어나서 역시 알지라 불렸던 겁니다.
서석 (2016-07-26 09:59:25)   
흉노왕비는 閼氏로 쓰고 연지로 읽는다고 사기 흉노열전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한중일 3국학자들이 모인 학술세미나에서 중국학자들은 한국에서 이것을 알지로 발음하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흉노어를 漢語로 옮기는 과정에서 음이 변한것으로 보이는데 "알"은 흉노어의 원음에 가깝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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