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글 쓴 이  
   서석 (2016-07-24 18:27:27, Hit : 219, Vote : 12)
제     목  
   초기 신라인의 姓에 대해
아래 크크리님의 반박문에 대한 재반박입니다.

신라왕족이 7세기대에 이르러서야 보편적으로 성을 사용했다는 것은 6세기대 그 많은 신라 금석문에 성이 없으므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신라 금석문은 판결문도 있고 행정문서도 있지만 어쨌든 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7세기대 금석문은 많지 않지만 김씨와 박씨가 보이고 일본서기의 신라사신 이름에 김씨와 박씨가 등장합니다.

唐書에 신라왕족은 김씨이고 귀족은 박씨라고 나옵니다.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명문에는 대부분 관직자가 김씨이고 일부 전문기술직에 추정하는 인물이 박씨성을 갖고 있습니다.

신라에서 최초로 김씨성을 사용한 사람은 진흥왕으로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진흥왕에서 위로 추적한 직계조상들을 김씨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추적한 시조는 미추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라왕족인 김씨 집단이 시조로 믿고 있었던 인물은 따로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나타납니다. 그렇게 나타난 인물이 성한왕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성한왕이 보이지 않고 따라서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 문무왕비문에 김씨 집단이 흉노왕자 투후 김일제의 후손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이 나타납니다. 김씨 집단이 실제 김일제의 후손인지 막연히 흉노의 후손이란 사실만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최초로  김씨 성을 사용한 사람은 진흥왕이며 그보다 앞선 시기에 김씨 성을 사용했거나 기록에 나오는 김씨 시조에 대한 내용은 신빙성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당장 삼국사기에는 신라 왕족이 시조 또는 태조로 믿었던 성한왕이 없습니다.  또 박씨가 왕족이었다는 것도 입증되지 않고 昔이란 성을 사용한 인물은 신라 당대의  어떤 기록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문경현 교수 같은 분은 박씨 왕족설은 고려때 삼국사기가 탄생하기 직전에 탄생했고 삼국사기 저자가 그것을 인용한 것 뿐이라고 말합니다.

일본의 신찬성씨록에는 수없이 많은 성이 보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성을 스스로 창안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지 신라에는 대부분 김씨이고 박씨 설씨 최씨,姚씨 顔씨 등의 성이 보이는데 다 꼽아도 열손가락으로 헬 정도입니다.

조선  초기만 해도 성을 가진 사람은 10%안팎이고 갑오경장때만 해도 30%의 인구는  성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다음글] 비파형동검과 함께 발견된 古人骨, 어떤 사람일까?
[이전글] 辰韓遺民이란 망국인 진한의 유민이란 뜻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mne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