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글 쓴 이  
   크크리 (2016-07-08 09:42:31, Hit : 247, Vote : 13)
제     목  
   김씨의 시조 성한왕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유리이사금


33년(서기 56) 여름 4월, 금성 우물에서 용이 나타났는데 얼마 후에 소나기가 서북쪽에서 몰려왔다.
5월,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三十三年 夏四月 龍見金城井 有頃暴雨自西北來 五月 大風拔木




탈해이사금


9년(서기 65) 봄 3월, 임금이 밤에 금성 서쪽 시림(始林)의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날이 샐 무렵에 호공을 보내 살펴보도록 하니, 나뭇가지에 금빛이 나는 작은 궤짝이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이를 아뢰자, 임금은 사람을 보내 그 궤짝을 가져오게 하였다. 열어보자 그 속에는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 뛰어났다. 임금이 기뻐하며 가까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로 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 자라나자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났으니, 그의 이름을 알지(閼智)라고 하였다. 금빛이 나는 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金)씨라고 하였다. 시림을 고쳐 계림(雞林)이라 부르고, 이를 나라 이름으로 하였다.

九年春三月 王夜聞金城西始林樹間 有鷄鳴聲 遲明遣瓠公視之 有金色小櫝 掛樹枝 白鷄鳴於其下 瓠公還告 王使人取櫝 開之 有小男兒在其中 姿容奇偉 上喜謂左右曰 此豈非天遺我以令胤乎 乃收養之 及長 聰明多智略 乃名閼智 以其出於金櫝 姓金氏 改始林名雞林 因以爲國號


[네이버 지식백과] 탈해 이사금 [脫解尼師今]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삼국유사 -김알지-


영평(永平) 3년 경신(서기 60)[혹자는 중원(中元) 6년이라고 하지만 잘못된 것이다. 중원은 모두 2년뿐이다.] 8월 4일 밤에, 호공(瓠公)이 월성(月城) 서쪽 마을로 가다가, 시림(始林)[혹은 구림(鳩林)이라고도 한다.] 속에서 매우 커다란 빛을 보았다. 자주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 속에는 황금 상자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그 빛은 바로 그 상자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흰 닭이 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이를 왕에게 아뢰자 왕이 그 숲으로 가서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상자 안에는 남자 아이가 누워 있다가 곧바로 일어났으니 혁거세(赫居世)의 옛 일과 같았다. 그래서 혁거세가 자신을 알지(閼智)라고 한 일에 따라, 그 아이를 알지라고 이름 붙였다. 알지는 우리말로 어린 아이를 뜻한다. 왕이 그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왔는데,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라오면서 기뻐 뛰어놀고 춤을 추었다.

왕이 길일을 택하여 태자로 삼았지만, 후에 파사(婆娑)에게 사양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금상자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씨(金氏)라고 하였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俱道)[혹은 구도(仇刀)라고도 한다.]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올랐다. 신라의 김씨는 알지에서 시작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알지 [金閼智]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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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60년(서기 3) 가을 9월, 두 마리의 용이 금성 우물에 나타나더니, 폭풍우가 심하게 불고, 성의 남문에 벼락이 떨어졌다.
六十年 秋九月 二龍見於金城井中 暴雷雨 震城南門

여기서 두용은 바로 협보와 주몽의 아들 작태자로 추정된다.(남당유고 고구려사략)

그런데 서기 56년에 또 용이 금성우물에서 나타난 것이다.

서기 3년에 나타난 두 사람은 모두 고구려 대신과 왕족이며, 훗날 협보는 다파라국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작태자도 물론 다파라군의 왕이 된다.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옛기록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유학을 배운 그들이 사서를

편찬하면서, 삭제하거나 왜곡해 기록한 것이 적지 않은데,  다행히 삼국유사의 일연도 삼국사기 편자들이 접했을 그 고기록을 보게 된 것이다.  여하튼 삼국사기 편자들은 이 두 사람을 두마리의 용으로 금성우물에서 나타났다고 하였다. 곧 신라왕실과 관계가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금성우물에서 나타났다고 기록한 것이다.

서기 56년에 나타난 인물도 분명히 당시는 왕이 아니었지만, 후대에 협보나 작태자와 같이 귀해졌기 때문에, 그 출현이 금성우물이며

또 용으로 기록된 것이다.  서북쪽에서 소나기가 왔다고 기록한 걸 보면, 고구려에서 왔다는 것을 뜻하고, 황용국의 알영이 비가 되었을 때 국명이 계림으로 불렸다고(삼국유사) 하는데,  박혁거세와 알영의 사후 다시 서라벌로 불렸고, 이 때 다시 계림으로 불린 듯하다.  부도지엔 탈해왕이 서라국이라 했다는데,  계림에서 다시 서라국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김알지 등장으로 서라국에서 계림으로 바뀐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에 대한 삼국사기 연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56년


병진(丙辰)



건무(建武) 중원(中元) 원년




유리 이사금 33년




국조왕 4년




다루왕 29년


즉 건무 중원 원년인 56년에 이 용이 나타난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는 " 혹자는 중원6년이라 한다는데 이것은 잘못이고 중원은 모두 2년뿐이다" 했다

내 생각으로는 옛날엔 인쇄가 아닌 손으로 옮겨 쓸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六은 元을 빨리 옮겨쓰다가 잘못된 표기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남당유고엔 김알지가 서기155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100세는 무리인듯 보이고, 56년에 나타난 사람이 김알지라면 굳이 65년에 다시 김알지를 기록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고, 또 용으로 56년에 표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바로  이 사람이 성한왕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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