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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


글 쓴 이  
   서석 (2016-07-04 14:28:31, Hit : 398, Vote : 22)
제     목  
   5세기 이후 김해가야와 김유신가계
고고학계에서는 5세기 이후 김해에는 왕국이라할만한 정치체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김해 대성동고분군에 거대분묘를 조성하던 집단은 5세기 초반 사라지고 주변 다른 집단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 400년 광개토왕의  남정시 도피하거나 고구려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신라 법흥왕이 데려온 구형왕-무력-서현-김유신으로 이어지는 가야왕족은 어디에서 왔다는 말인가?  다른 곳에서 왔다면 왜 김해출신으로 알려졌을까?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를 보면 김유신가계인 가락왕실은 줄곧 김해를 떠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다. 김유신의 증조부 구형왕을 비롯한 가야왕족이  김해출신이란 것이 신라인의 인식이라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고고학계에서는 5세기 이후 김해식 토기문화가 고령쪽에서 많이 발견되므로 김해가야 주민들이 고령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김해의 남가라와 고령의 가라가 병립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부산 복천동과 연산동에 거대 거분군을 남긴 집단이 어떤 이름을 남겼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서기의 남가라외에 달리 찾을 수가 없다. 일본서기의 남가라를 김해가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5세기 이후의 김해에서 거대정치체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부산 복천동에 그것이 있다면 부산 복천동을 김유신 조상들의 원적지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신라인은 왜 부산을 잊고 김해를 김유신가계의 출신지로 알고 있었을까?

필자의 생각은 수로왕에 대한 설화가 부산,김해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김유신가문이 신라에 귀순한지 4대 130여년이 흐르면서 원적지에 대한 기억을 많이 상실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지금 김해에 수로왕릉과 허왕비릉으로 알려진 고분도 7세기 후반에 조성된 횡혈식석실분으로 문무왕이 지시한 가묘라고 주장하는 측이 있다.  

그런데 이런 가설에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복천동고분을 조사한 바 복천동세력은 광개토왕 남정이 있던 5세기 이전부터 그 지역에서 서서히 성장한 세력일 뿐 외부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락국기를 보면 전반부와 후반부가 뭔가 다른 분위기가 있고 중간에 짜집기된 흔적이 보인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5세기 이전의 김해가야사와
남가라로 알려진 부산복천동 집단의 이야기가 연결된 것이 가락국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가락국기에는  후반부에 신라관직명이 많이 보이며 실제 복천동에도 신라계 유물이 많다. 지리적 위치로 보아 복천동세력은 신라와 왜 양쪽에 복속하며 줄타기외교로 버티다 신라에 귀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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