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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


글 쓴 이  
   서석 (2016-03-29 18:42:59, Hit : 413, Vote : 16)
제     목  
   일본서기를 통해 복원한 한국고대사
일본서기가 500여년 앞선만큼 삼국사기보다 정확한 부분이 많다는 점은 이미 많은 학자들이 밝혀낸 바다.

하지만 일본서기는 어디까지나 고대 일본인들이 천황가의 위세를 높이기 위해 쓴 그들의 역사서라는 한계가 있다. 그 자료도 참고만 할뿐, 맹신해서는 안된다는건 분명하다.

그러나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부분을 보면 우리 사료보다 정확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여기서 그것을 다 거론하고자 하는건 아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필자가 경주문화재연구소 유물수장고에서 본 신라기와에 새겨진 習部가 오직 일본서기에만 나온다는 사실이 있다.

우리 자료에는 習比部가 있어 습부가 습비부구나 짐작은 하지만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명백하다.

무엇보다 우리 역사의 빈 곳을 채워주는 중요한 단서는 신라가 언제부터 김씨나 박씨 姓을 일반적으로 사용했느냐를 알 수 있는 점이다.

일찍이 수서 등 중국자료에 진흥왕이 김씨성을 사용했다고 하나 어디까지나 외교문서일 뿐이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신라사신을 위주로 한 신라인명에서 언제 姓사용이 일반화되었는지 신빙성있게 나타내고 있다.
(필자의 확인으론 620년대 선덕여왕재위시)

이 점은 일부 학자들이 논문에서 이미 주장하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

이름에 姓이 관칭되면서 그 동안 인명앞에 반드시 붙던 部名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부명과 姓이 동시에 기록된 과도기도 있음)

그렇다면 초기 신라금석문에서 고위관리(京位)의 인명앞에 관칭되던 부명이 姓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단위정치체다, 또는 행정구역명이다,이것만 따질게 아니라 탁부와 사탁부는 후대의 김씨 박씨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탐색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서석 (2016-03-29 18:53:19)   
성씨사용이 7세기대 일반화되었다면 초기신라사연구에서 김씨족,박씨족,석씨족 이렇게 구분해서 족단간에 갈등과 협력이 있었다는 대다수 논문들은 폐기되어야 한다. 삼국사기,삼국유사의 한계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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