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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


글 쓴 이  
   一道安士 (2016-03-28 05:53:47, Hit : 476, Vote : 22)
홈페이지  
   http://www.histopia.net/zbxe/neo/
제     목  
   일본서기 보는 법 7. 임나사신 선물탈취사건


*일본서기 숭신천황 65년(116); 가을 7월에 임나국이 소나갈질지(蘇那曷叱知)를 파견하여 조공하였다. 임나는 축자국을 떠나 2천여 리, 북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계림의 서남에 있다.

*일본서기 수인천황 2년(118); 이 해에 임나인 소나갈질지가 “나라에 돌아가고 싶다.”고 청하였다. 아마도 선황의 시대에 알현하러 와서 아직 돌아가지 않았던 것인가? 그래서 소나갈질지에게 융숭하게 상을 주었다. 아울러 붉은 비단 1백 필을 주어 임나왕에게 하사하였다. 그러나 신라인이 길을 막아 이것을 빼앗아버렸다. 양국의 원한이 이때 처음으로 생겼다.

2세기 초인 116년에 숭신이 죽어 조문을 다녀오던 임나가야(의부가라) 사신이 귀국하다 118년에  신라에게 선물을 탈취 당했다는 기록이다. 이에 대하여 ‘구주의 왜국과 부산 사이를 신라가 위협할 정도면 신라가 부산지역에 내려와 있어야 하는데, 신라가 부산지역에 내려온 것은 6세기 중반 법흥-진흥왕 이후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는 기록이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야마도를 건국한 숭신이 임나가야인이기 때문에 죽어서 조문을 다녀온다는 것은 상황이 합리적이다. 더욱이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이후 신라와 임나(신라본기의 왜)가 치열하게 싸우기 때문에 별로 이상한 기록이 아니다.

지금은 북쪽이 바다인 곳은 대마도 뿐이나 당시 김해평야가 바다였으므로 임나와 신라 사이에 바다가 있다는 것도 자연스럽다. 대마도 역시 임나의 세력권이었기 때문에 '대마도는 임나다'는 맞으나 '임나가 대마도다'는 포함관계상 틀린다. 부산가야인 임나가야를 의부가라라고 하는데 부산의 '부'와 의부의 '부'가 발음이 같다.

문제는 과연 2세기 초에 신라가 부산지역에 진출했느냐이다. 118년에 임나사신의 선물을 탈취할 정도면 그 무렵에 신라가 부산지역에 내려와 있어야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펴고 118년 전후하여 혹시 그런 기록이 있는지를 찾는다. 118년이면 지마이사금 7년이다.

*지마이사금 十年(120), 春正月, 以<翌宗>爲伊湌, <昕連>爲波珍湌, <林權>爲河湌{阿湌}. 二月, 築<大甑山城>. 夏四月, 倭人侵東邊.  

2년 후인 120년 1월에 신라에 대규모 승진인사가 있었고, 2월에는 대증산성을 쌓았는데 그것이 부산지역이다. 그리고 4월에는 왜인이 동쪽을 침범해왔다. 신라본기 초기의 부산지역 기록은 아주 드무니 신라에게는 큰 성과다. 그리고는 6세기 중반 이후에 부산지역에 진출하다. 따라서 부산지역 진출에 공을 세운 인물들에 대한 승진인사가 충분히 가능하고, 이를 굳히고자 대증산성을 쌓은 것이다. 4월에 있는 왜인의 동변 침범은 이에 대한 당연한 반격이다.

*지마이사금 十二年(122), 봄 3월 왜국과 강화하였다.

122년에 부산지역에서 철수한 것이다. 대증산성을 축조한지 2년 만이다. 비록 신라는 부산지역에서 철수하지만 2세기 초에 벌어진 임나와 신라 그리고 왜국이 연결된 국제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 서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116년의 숭신 사망기록 및 임나사신 조문기록, 118년의 임나사신의 선물탈취 기록, 120년의 신라 대증산성 축조기록, 그리고 122년의 신라와 왜국(임나)의 강화기록 등은 모두 믿을만하다.

삼국사기 기록들을 실증한다는 것이 별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초기 기록 전체에 대해서 하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기록에 대한 동북아역사재단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하나마나한 이야기(1)(4)거나 오류거나(2)(3)(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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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나갈질지에 대해 『日本書紀』 수인천황 2년 시세조의 분주에서는 意富加羅國의 왕자
라고 적고 있다.
(2)즉 大加羅國의 왕자로 보고 있는데, 이는 任那國을 大加羅國으로 보는
『日本書紀』 편찬자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3)한편 소나를 금관, 갈질지는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소나갈질지를 금관국왕이라고 보는 설과 소는 金이며, 那는 國으로 소나는
金國이라는 뜻이고, 갈은 郡, 邑의 古訓인 골이며, 질지는 臣智, 斯等과 같이 대읍장이라
는 뜻이기 때문에 소나갈질지를 금국의 읍장으로 보는 설이 있다.
(4)또한 3세기 초에 금관국이 갑자기 약해졌는데,
(5)그 이유를 김해가야의 지배집단이 일본으로 이주했기 때문으
로 보는 설이 있다.-<동북아역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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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서를 보면 백제는 마한의 1국이었고 신라는 변진한지역 여러 소국들 중 하나였는데 왜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에 마한과 변진한은 안 나올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 나온다. 백제본기의 왜가 마한이고 신라본기의 왜가 변진한이다. 다 나오는 데 편견을 가지고 사서를 대하니 안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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