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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렁'은 서로 상생하며 모두를 위한다라는 제주도 말입니다



글 쓴 이  
   크크리 (2017-04-28 15:53:26, Hit : 36, Vote : 7)
제     목  
   온조왕시기의 말갈과 낙랑
온조왕의 BC6년 이전 기사중의 말갈과 낙랑은 대륙백제와 관계된 말갈과 낙랑군이고,
그 이후의 낙랑과의 전쟁도 대륙백제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18년(기원전 1) 겨울 10월, 말갈이 습격을 하여 임금이 병사를 거느리고 칠중하(七重河)에서 맞아 싸웠다. 추장 소모(素牟)를 사로잡아 마한으로 보내고 나머지 적들은 모두 묻어 죽였다.
11월, 임금은 낙랑의 우두산성(牛頭山城)을 공격하려고 구곡(臼谷)에 이르렀는데, 폭설을 만나 돌아왔다.
十八年 冬十月 靺鞨掩至 王帥兵 逆戰於七重河 虜獲酋長素牟 送馬韓 其餘賊盡坑之 十一月 王欲襲樂浪牛頭山城 至臼谷 遇大雪 乃還
=> 10월의 말갈은 한산에 도읍한 백제를 공격한 말갈 도적떼입니다.

    11월의 낙랑 우두산성은 대륙의 낙랑입니다.



22년(서기 4) 가을 8월, 석두(石頭)와 고목(高木) 2개의 성을 쌓았다.
9월, 임금이 기병 1천을 거느리고 부현(斧峴) 동쪽에서 사냥하다가 말갈의 적병을 만났다. 한 번 싸움으로 그들을 격파하고 포로를 사로잡아 장수와 병사에게 나누어 주었다.
二十二年 秋八月 築石頭高木二城 九月 王帥騎兵一千 獵斧峴東 遇靺鞨賊 一戰破之 虜獲生口 分賜將士

9월기사에서의 말갈은 말갈 도적떼인데, 몇명인지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소규모로 보입니다.

대륙에서 나타나는 말갈과는 수적으로 적다고 생각됩니다.  또 왕이 사냥중이었다고 하니  한산에 도읍한 백제에 관련된 기록이라 생각됩니다.



37년(서기 19) 봄 3월, 달걀만한 우박이 떨어져 새들이 맞아 죽었다.
여름 4월, 가뭄이 들었는데, 6월이 되어서야 비가 왔다. 한수의 동북 마을에 흉년이 들어 민가 1천여 호가 고구려로 도망가니 패수(浿水)와 대수(帶水) 사이가 텅 비어 사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三十七年 春三月 雹大如雞子 鳥雀遇者死 夏四月 旱 至六月乃雨 漢水東北部落饑荒 亡入高句麗者一千餘戶 浿帶之間 空無居人

[네이버 지식백과] 시조 온조왕 [始祖溫祚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 한수의 동북 마을에 흉년이 들어 민가 1천여 호가 고구려로 도망가니 패수(浿水)와 대수(帶水) 사이가 텅 비어 사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원래 기록(추정)

패수의 동북 마을에 흉년이 들어 민가 1천여 호가 고구려로 들어가니 패수(浿水)와 대수(帶水) 사이가 텅 비어 사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대룩백제와 한반도 한산에 도읍한 백제의 기사를 구분없이 기록하는 바람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생각됩니다.

기록중 일부는 글자를 손대서 백제가 한수에만 있었던 것처럼 조작했던 것입니다.

  



남당유고처럼 삼국사기의 온조왕 4년 (BC15년) 가을 8월, 사신을 낙랑(樂浪)에 보내어 우의를 다졌다. 여기서의 낙랑은 경북과 강원도 남부를 차지하였던 조문국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제와 조문국은 전쟁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문국이 한반도의 진한이고 낙랑인데, 이들과 전쟁 상대국이었다면, 마한을 합병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개로왕이 고구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문주왕이 웅진에 도읍을 했을 때, 웅진이 신라땅이였다는 것은
혹시 태조왕 이전에 온조왕이 합병한 마한의 영역을 신라에게 넘겨주었던게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마한의 도읍지가 익산인데,  신라가 이곳을 공격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령땅과 마한땅을 고구려에서
할양받은게 아닌가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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