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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렁'은 서로 상생하며 모두를 위한다라는 제주도 말입니다



글 쓴 이  
   크크리 (2017-04-26 18:41:09, Hit : 36, Vote : 9)
제     목  
   고루태자
추모경 후비열전

-계맹자(환나국의 여왕인 계황후의 언니로, 계황후가 나라를 추모왕에게 바치자, 대신 환나국의 국정을 맡았음), 추모왕과의 사이에 아들로 고루태자, 딸은 만공주가 있었다.
  *고구려의 고씨 시조는 고루태자로 추정되고 있다.  온조와 비슷한 처지였다고 생각되며, 온조에게 협조하여 후일 그의 자손이 고구려의 왕위에 올랐다고 생각된다.

고구려의 왕위계승은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추모왕  - 유리왕 - 해술왕 (유리왕 계통)
        - 온조왕 - 대무신왕-  민중왕 - 모본왕(온조왕 계통)
        - 신명선제(남당유고에  모본제 다음의 황제로 기록) - 태조왕(고루태자 계통)
**********************************************************************************************

종묘에 들일 때에도 「종부」가 <전>후를 <계>후의 위로 하였더니, 금일에 이르러서도 그 당시의 예법이 틀렸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전>후는 훌륭한 공적이 크지 않았음은 아니지만, 창업함에 있어서 어찌 능히 <계>후의 만분의 하나에나 당하겠는가! <광명>의 시절에 <계>후가 낮게 추대되어서 <고루>가 근심하고 조심하면서 변방의 외진 땅에 있었던 것은, <맹>후{계맹자}와 <환복>이 「경부{龍骨族 사림들이 居處하는 官府 또는 그 宮人}」를 등에 업지 못한 때문이었어라.

-중략-
<섬니>의 도성{潞城地境?}에까지 다다라서 적장 <호산>과 붙어서 그들의 도성 아래에서 크게 싸우셨다. 상께서 몸소 북을 두드려 독전하시매 <호산>의 화살이 날아왔더니, 후가 상의 앞을 가로막아서 연이어 두 발을 맞았으며 독이 지독하여 고통을 참느라 말을 하지 못하였더니, 상께서 친히 <호산>을 쏘아서 죽이고 그 아래인 아홉 장수들 모두를 군진 앞에서 상하게 하셨더니, 적들은 감히 당할 수 없음을 알아서 항복하였다. 이에 <섬니>를 참하고 그 나라를 멸하여 군郡으로 삼았다. 연후로, 이로 인하여 자리에 누운 지 열하루 만에 죽으시니{BCE31年} 춘추 서른둘{BCE62年生}이었다. 아들은 <고루>태자이고 딸은 <만>공주다. 황후의 예법으로 <진주하산>에 장사하였으니, 이름 하길 <진주릉>이었으며, 상께서는 <오처곡>을 만들어 슬퍼하셨다. <이문진{留記 100권을 新集 5권으로 찬하였다는 태학박사}>이 이를 번역하여 그 가사를 <황려사><림명호>에 실었다. <동명>의 천후들은 모두 합하여 여덟이었으나, 오로지 후와 <화>후만이 정식으로 혼인하였던 것이다. 후의 공적과 업적이 후세에 오래도록 책으로 되어 있어서, 역대에 <자오지사子午之史{荇人征伐子午谷戰}>를 읽지 않음이 없었더니, 그 계곡을 지나친{子午谷 이야기를 이미 읽은} 이들은 미상불 책을 덮고 탄식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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