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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렁'은 서로 상생하며 모두를 위한다라는 제주도 말입니다



글 쓴 이  
   크크리 (2017-04-24 03:02:04, Hit : 39, Vote : 5)
제     목  
   형혹수심, 도절의 망명
13년갑인{BCE 7}, 정월, <아이阿爾>후가 춘추 서른에 죽었다. (남당유고 광명대제기) => 아이후 여인국으로 망명.
13년(기원전 7) 봄 정월, 형혹(熒惑, 화성)이 심성(心星) 자리에 머물렀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
十三年 春正月 熒惑守心星  => 천자의 자리를 넘보았다는 의미인데, 아이후가 망명을 갔고,
백제본기를 보면 BC6년에 고구려군이 침입하여 소서노가 남장을 하고 망명을 한 것 같습니다.

신라본기 박혁거세에 호공을 본래 왜인으로, 처음에 박을 허리에 차고 바다를 건너 왔기 때문에 호공(匏公)이라고 부른 것이다. => 망명코스가 다파나국으로 가거나,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왜를 거쳐 신라로  가는데,  호리병 같은 작은 배를 타고 갔기 때문에 호공이라 한 것 같습니다.  아이후는 대표(大瓢)라 했으니, 망명객이 많이 탔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문제가 컸다는 의미라 생각합니다.

고구려내에 뭔가 안좋은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13년 (BCE 7) <금와金蛙{東扶餘}>왕이 죽고, <대소帶素>가 즉위하였다.(광명대제기)
14년을묘{BCE 6}, 정월, <도절>이 <책성柵城{東扶餘都城}>으로 가서 <대소帶素>딸과 혼인하였다.(광명대제기)
=> 대소의 딸이 고구려에 와서 도절과 혼인하였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14년(기원전 6) 봄 정월, 부여왕 대소(帶素)가 사신을 보내 문안하고 인질 교환을 청하였다. 임금은 부여가 강대한 것을 꺼리며 태자 도절(都切)을 인질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도절이 두려워하여 가지 않자 대소가 화를 냈다.(삼국사기 유리왕)
=> 부여왕 대소가 고구려가 강대해진 것을 꺼리며, 태자 도절을 인질로 삼으려고 했으나, 유리왕이 보내지 않자 대소가 화를 냈다.

-백제본기 온조왕 13년
(기원전 6) 봄 2월, 서울에서 한 늙은 할미가 남자로 변하였다.
호랑이 다섯 마리가 성 안으로 들어왔다.
왕의 어머니가 61세로 돌아가셨다.
=>2월에 소서노가 남장을 했고, 고구려군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소서노가 망명을 했다는 뜻이라 생각됩니다.
  소서노와 비류를 쫒아냈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부여왕 대소가 10월에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10월, <대소>가 5만군을 끌고 침입하여 <송강松江>을 노략하다가 큰 눈이 이레를 내리고 얼어 죽은 이가 열에 아홉이 되매, <해소觧素>의 간언을 뿌리친 것을 후회하였다. (광명대제기)
겨울 11월, 대소가 군사 5만을 이끌고 침략하여 왔으나 큰 눈이 내려 사람들이 많이 얼어 죽자 곧 돌아갔다.(삼국사기 유리왕)

유리왕
16년 (BCE 4)도절이 16세에  한반도의 삼한으로 유학을 감. 대현(大賢)이라 불림. (경주이씨 족보)
http://blog.daum.net/lrrock5050/28

20년신유{CE 1}, 정월, <도절>태자가 <책성>에서 돌아오다가 죽으매, <대소>가 이 일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도절>의 시신을 돌려보내고 자기 딸은 데리고 있으려 하였더니, 죽은 <도절>이 슬퍼하며 일어나지 않았다. (광명대제기)

=> 문구가 이상합니다.  생각컨대  대소의 딸이 죽었다는 것이 본래의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고구려에서 부여로 대소의 딸이 돌아가다가  죽었고,  유리왕이 이 실수를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시신을 돌려보내고,  도절을 머무르게 하려고 하니 따르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이때 도절이 죽었다고 하니, 바로 여인국  으로 망명했다는 겁니다.
自愧其失 => 도절에게도 뭔가 잘못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대소의 딸이 도절과의 불화로 도중에 자살한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봅니다.  아버지 유리왕에게 용납될 수 없음을 알고, 도절입장에서는 배를 타고 망명을 떠나야 했다는 겁니다.  훗날 해명태자가 유리왕에게 꾸지람을 듣고 자결한 것을 보면,  도절입장에서는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변명이 통하지 않았을테니...   너무 잘났기 때문에 여자문제로 인해 불화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오늘날도 저런 수재라면 주위에서 탐낼테고, 유혹도 많았을 겁니다. 고대사회에서야 더욱 심했을테고, 그것이 문제가 되어 대소의 딸이 자살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20년(서기 1) 봄 정월, 태자 도절이 죽었다.(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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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science.com/news.php?idx=12231


● 나라에 재앙이 가득한 ‘형혹수심’

화성과 전갈자리가 불안과 공포를 가져왔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국에서는 전갈자리를 이끄는 세 별을 천자, 태자, 서자로 불렀으며 그 중 가장 밝은 안타레스를 천자로 생각했습니다. 화성은 안타레스의 기를 빼앗아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현혹시킨다는 뜻의 ‘형혹성’이라고 불렀죠.
따라서 화성이 전갈자리의 안타레스에 접근할 때에는 ‘형혹수심(熒惑守心)’이라고 해서 화성이 전갈자리의 심성(心星), 즉 안타레스 자리에 머무는 것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화성이 전갈자리에 머물면 천자 즉 임금의 앞날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불길한 전조로 점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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