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렁'은 서로 상생하며 모두를 위한다라는 제주도 말입니다



글 쓴 이  
   크크리 (2017-02-12 14:52:00, Hit : 75, Vote : 15)
제     목  
   김유신기록의 허구성 사례와 백제 고구려의 멸망
유신의 현손(玄孫)으로서 신라의 집사랑(執事郞)인 장청(長淸)이 행록(行錄) 10권을 지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만들어서 넣은 말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일부 삭제해 버리고 기록할 만한 것들을 취하여 전(傳)을 만들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유신 하 [金庾信 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만들어 넣은 말로 보이는 것이 662년 1월이후의 기사인데....



이때 고구려인들이 병사를 잠복시켜 우리 군사를 귀로에서 요격하려고 하였다. 유신은 북과 북채를 여러 마리 소의 허리와 꼬리에 매달고는 후려쳐서 요란한 소리가 나게 하고, 또한 섶풀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서 연기와 불이 끊이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는 밤에 몰래 행군하여 포하(薸河)에 이르자 급히 강을 건너 병사들을 쉬게 하였다. 고구려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 쫓아오자, 유신은 1만의 쇠뇌를 일시에 쏘게 하였다. 고구려군이 후퇴하므로 모든 진영의 장병들을 독려하여 무리를 나누어 들이쳐 무너뜨리고, 장군 한 명을 사로잡고 1만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위로하였다. 그들이 돌아오자 공의 정도에 따라 봉읍과 작위를 상으로 주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유신 중 [金庾信 中]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식량운반이 목적이며, 고구려군을 피하려 험한 길로 고구려에 들어갔던 신라군이 1만의 쇠뇌를 일시에 쏘게 하였다는 것은

겨울의 날씨임도 고려할때 불가능한 것이다.   일만의 쇠뇌라면 수십만발의 화살도 가져갔다는 것인데,  말도 안되며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신라군이 1만인 것이므로  허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천을 쏘았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김유신의 능력은 비담과 염종의 난 기사에 잘 드러나 있다.  AD 660년 황산벌전투에서의 계백장군과의 일전에서도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김유신의 전투수행 능력이었던 것이다.  그는 모략가로서는 성공했지만, 전장에서의 승부사는 아니였다.

그러므로 그의 전기에 수록되어 있는 전쟁의 공로는 상당부분이 거짓포장이라고 볼수 밖에 없다. 김장청이 모략가로서 성공한 김유신을  명장인 것처럼 포장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선덕왕 16년, 진덕왕 원년(서기 647년)

1) 비담과 염종이 병사를 일으키다.

16년 정미(서기 647)는 선덕왕 말년이요, 진덕왕(眞德王) 원년이다. 대신(大臣)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이 ‘여왕이 정치를 잘하지 못한다.’하여 병사를 일으켜 폐위하려 하였다. 선덕왕은 안에서 이를 막아내었다. 비담 등은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의 군대는 월성(月城)에 군영을 두어 공방을 열흘간 하였으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한밤중에 월성에 별이 떨어지자 비담 등은 사졸들에게 말하였다.

“별이 떨어진 곳에는 꼭 피를 흘리는 일이 있다고 들었다. 이것은 반드시 여왕이 패전할 징조이다.”
병졸들의 함성이 땅을 뒤흔들었다.

十六年丁未 是善德王末年 眞德王元年也 大臣毗曇廉宗 謂女主不能善理 擧兵欲廢之 王自內禦之 毗曇等屯於明活城 王師營於月城 攻守十日不解 丙夜大星落於月城 毗曇等謂士卒曰 吾聞落星之下 必有流血 此殆女主敗績之兆也 士卒呼吼聲振地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두려워 어쩔 줄을 몰랐다. 유신이 왕을 뵙고 말했다.

“길하고 흉한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붉은 새1)가 모여 들었지만 주(紂)가 망하였고, 기린2)을 얻었어도 노(魯)나라가 쇠퇴했으며, 꿩3)의 울음으로 인해 고종(高宗)이 흥기했고, 용4)의 싸움으로 인하여 정공(鄭公)이 창성해졌습니다. 이로써 덕은 요사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별의 변괴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그리고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씨를 넣어 연에 실어 날렸다. 이는 마치 별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다음날 사람을 시켜 ‘어젯밤에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길거리에 말을 퍼뜨려 적군들이 의심하게 하였다. 또 백마를 잡아 별이 떨어진 곳에 제사를 지내며 다음과 같이 기원하였다.

“천도(天道)에는 양(陽)이 굳세고 음(陰)이 부드러우며, 인도(人道)에는 임금이 높고 신하가 낮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바뀌는 경우에는 큰 난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비담 등이 신하로서 임금을 도모하고, 아래에서 위를 범하려 합니다. 이는 이른바 난신적자(亂臣賊子)로서 사람과 신령이 모두 미워하는 바요,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할 일입니다. 지금 하늘이 이 일에 무심하시어 도리어 왕성에 별의 변괴를 보인 것이라면, 신은 의혹됨이 있어 깨우치지 못하겠습니다. 오직 하늘의 위엄으로 백성들의 바람을 좇아 선(善)을 선하게 여기고 악(惡)을 미워하시어 신령의 부끄러움이 없게 하소서.”

그리고 모든 장졸들을 독려하여 그들을 들이쳤다. 비담 등이 패하여 달아나므로, 쫓아가 목을 베고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大王聞之 恐懼失次 庾信見王曰 吉凶無常 惟人所召 故紂以赤雀亡 魯以獲麟衰 高宗以雉雊興 鄭公以龍鬪昌 故知德勝於妖 則星辰變異 不足畏也 請王勿憂 乃造偶人抱火 載於風鳶而颺之 若上天然 翌日 使人傳言於路曰 昨夜 落星還上 使賊軍疑焉 又刑白馬 祭於落星之地 祝曰 天道則陽剛而陰柔 人道則君尊而臣卑 苟或易之 卽爲大亂 今毗曇等以臣而謀君 自下而犯上 此所謂亂臣賊子 人神所同疾 天地所不容 今天若無意於此 而反見星怪於王城 此臣之所疑惑而不喩者也 惟天之威 從人之欲 善善惡惡


[네이버 지식백과] 김유신 상 [金庾信 上]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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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모략술로 멸망시켰고, 고구려도 모략술로 멸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이는데,  즉 연개소문 아들들의 내분은

김유신의 모략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근거는



신라본기 문무왕6년 기사에 있다.



6년(서기 666) 봄 2월, 서울에 지진이 났다.
여름 4월, 영묘사(靈廟寺)에 불이 났다.
죄수를 크게 사면하였다.
천존의 아들 한림(漢林)과 유신의 아들 삼광(三光)은 모두 나마로서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하였다.
임금은 백제를 평정하였으므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자 당나라에 병사를 요청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무왕 상 [⽂武王 上]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고구려가 멸망될 수밖에 없는 것을 신라가 알았고, 멸망시키고자 했다는 것은 곧 고구려내분의 실체는 고구려사람들이

아니라 신라였다는 근거인 것이다.  실제 고구려내분의 결과 고구려에서 누구도 뚜렷하게 이득을 본 세력이 없고

고구려 멸망 뒤에도 그 실체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본기의 위 기사는 그 내분을 조장한 실체가

신라였으며,  당시  최고위직이었던 김유신이 관련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김유신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AD668년 고구려

평야성 전투에 참여하였으나, 삼국사기에는 누락되어 있다. 이것은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왕조에서 왕명으로 편찬하는

삼국사기에 도저히 김유신이 고구려 멸망에 개입하였다는 것까지는 기록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모순인 것은 연개소문은 일본의 천무천황이고,  신라의 문무왕은 일본의 문무천황이 되었다는 주장으로

천무천황은 문무천황의 아버지가 되므로, 연개소문과 문무왕은 부자지간이 되는 것이다.

천무천황은 일본출신일 수 없고, 문무천황 또한 일본출신이 아니다. 그 당시의 교육환경 측면에서 볼때  일본에서는 나올수가

없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실제 두사람이 부자지간이라면 왜 김유신은 문무왕이 고구려를 멸망케 놔두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문무왕은 무슨  생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천무천황을 만났는지도 의문이다.

세사람이 고인이 되었으므로 누가 대답해야 할지도 의문이다.







부득이하지만, 내가 추측하건데, 삼국유사를 참고하여 생각해볼 때,  김유신의 전생은 고구려의 유명한 점쟁이 추남이었고,

추남이 억울하게 왕에게 죽게 되자, 다시 태어나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고 말했다는 것인데, 이것이 곧 김유신의 한계였던

것이다.  추남은 왕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인데, 모든 고구려 사람들을  위기에 모는 발언을 한 것이다. 신라에서 태어났던

김유신 또한 신라의 입장에서만 고구려,백제를 생각했지 고구려, 백제의 시각에서 보는 관점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처하게 했으면, 그가 이룩했다고 하는 삼국통일은  통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오직 신라인만을 위한 통일만을 생각한 것이지, 결코 고구려, 백제인을 생각한 통일은 아닌 것이다.  고구려, 백제가

쑥대밭이 된 것이니, 이것이 어떻게 통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가 말한 내용을 보면, 대개 중국사에 나오는 인물만이 등장하는데, 이것 또한 그의 큰 문제인 것이다. 헌원의 후예라는 생각만을 가졌지, 그의 조상이 어떻게 가야로 왔으며,  신라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고구려 사람들이 신라의 실체였다는 것을 제대로 몰랐던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한 것이다. 조선유민이나 옛 진한의 실체였던 조문국 사람들 자체도 옛 조선땅에서 온 사람들인데, 그곳 자체가 고구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몰랐던 것같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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